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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각 강대용 선생을 기리며...
남각선생 강대용시인
남각 강대용선생을 기리며...
그는 형광등 하나도 못 갈듯 세상사엔 철없었지만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외국어에도 재주가 있었네
동아일보 기자시험에 합격하여 수습을 마쳤고
KBS에 입사하여 제주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연합통신, 매일신문사, 조폐공사 공채에도 합격했으며
고등학교 교사로도 근무하였고 학원도 운영했었지
대학원에서는 지도교수와의 갈등으로 그만두었다가
10여 년 만에야 석사학위를 받았다지요
아마 姜大龍(강대룡)이란 이름이 너무 커서
그가 살 강물이 너무 작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때 세상과 문학을 논하고 정의를 외쳤지
그러나 그는 투사가 되기엔 너무 맘이 여리고
생활인이 되기엔 이상이 너무 컸었네
천상 학자나 시인이 맞았으나 그 꿈도 접고 말았지
일흔을 앞두고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젊은 날 메모해두었던 유작노트가 남았네.
십여 편 외엔 미완성 작품들도 있었지만
부인, 우성이 우연이 두 아들의 사랑과
오래 함께 했던 우리 친구들의 우정으로
강남각, 그의 시편들을 여기 정리하여
빛나던 청춘의 흔적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 내 친구 강남각, 사가 이임수 (시인, 동국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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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어지간히 썼으니 옷 갈아입을 때가 되었네.
당신, 이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겠네."
투병 중 부인에게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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